눈에 담다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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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를 따라 나무에 말을 걸면 

나뭇잎의 초록색이 눈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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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따스해진 이끼가 향내를 풍기고 

아래로 기울여진 계단을 걸으면 

하늘을 올려보며 각막에 호수를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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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의 초록색과 하늘로 만든 호수가 

눈동자에서 서로 섞이고, 

이제 모두 갈색으로 한풀 꺾여, 

그 볼멘소리도 고요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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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방법으로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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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으로 존재하려 침묵한다_2012

 

아름다움으로 존재하려 침묵한다. 
침묵으로 존재하기 위해 아침을 서서 맞이하고 
겸손함으로 이겨내기 위해 눈을 감고 걷는다. 
별이 빛으로 화답할 때, 
잠시의 설레 임으로 보상받고, 
기어 코는 다시 찾아든 아침에서 침묵한다. 
아침을 맞이할 수 없는 그때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으로 존재하기 위해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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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위를 걷다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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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하나 그어진다. 
앞서 뱉었던 숨이 안개로 모공을 쑤셔댄다. 
내 바짓자락이 발등을 깊이도 핥아내면, 
발자국 깊이만큼 눌러졌던 길을 되돌린다. 
헤진 소매에 가려졌다 열심히도 단정 지으며, 
손가락을 움직여 무언갈 센다. 
생각이 내 목덜미를 적셔가고, 
뜨거운 숨이 덜컥 막혀온다. 
폐를 쥐어짜며 막힌 숨을 올려 뱉어, 
그곳에 검지를 사선으로 그으면 
선 하나 그어진다. 
손가락 마디 수만큼 제곱 되는 내 숨을 느끼며, 
선 하나 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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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비석이면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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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비석이면 

산은 외롭다. 

기억은 추억이 되고 꿈도 추억이 되어서 

한데 섞여 이제 찾지 않는다. 

떠올릴 땐 추억인데, 

찾을 땐 과거라 

생각은 쉽게 하는데 

발은 쇳덩이와 같다. 

 

내 사는 이 시간이 

추억이 될까 과거가 될까 

마주 서서 웃고 

그래도 이곳에 선다. 

 

나는 가로등. 

아무도 찾지 않아도, 

빛을 비추고 

그래도 이곳에 섰다. 

 

과거도 비석이면 

인은 외롭다. 

다리가 비석이 되고 마음도 비석이 되어서 

각자 나뉘어 이제 찾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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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만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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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커 버린 가로수와, 

고르지 않은 보도블록, 

틈을 비집고 나온 꽃들의 길을 간다. 

낭만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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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 가슴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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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 가슴에, 

비가 담겨, 

이제 나는 

비 온 가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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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 또각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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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유리창을 손으로 닦아서 

또렷해진 너를 본다. 

높은 구두가 힘들어 보여, 

넘어질 듯 휘청거린다. 

"하늘이 좀 더 높이 보여" 

너의 혼잣말이 들리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웃으며 고갤 끄덕여 

귀여운 네가 걷는다. 

흐린 유리창을 손으로 닦아서 

좀 더 앞의 너를 본다. 

뭔가 즐거워 보여,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좋니?" 

내 못난 입김이 널 가려서 

황급히 다시 닦아낸다. 

잠시 사라진 네 모습에 가슴이 철렁 

귀여운 네가 걷는다. 

흐린 유리창에 볼을 눌러서 

멀어지는 너를 본다. 

너와 나를 갈라놓은 이 유리가 미워. 

널 빨리 가리는 창틀도 밉다. 

햇빛을 머금은 치맛자락을 끝으로, 

이제 입김도 상관없어 

안녕이라 나지막이 말한다. 

다시 벽을 마주하고 눈을 감아 

흐린 유리창을 손으로 닦아서 

나도 모르게 온통 먼지투성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너와 같이 햇볕을 쬐는 상상을 해, 

또각 또각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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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미워질 때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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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잘게 으깨어서, 

사람들의 허영심만큼, 

꾸며진 우연만큼, 

자신을 어지럽히는 허세 만큼, 

나와 다른 이를 바라보듯 

내가 던져놨던 단어들만큼 

그래 딱 그만큼 

심장을 잘게 으깨어서 

조금은 마시게 해줄까? 

너에게도 조금 줄까? 

조금은 날려보내기도 하고, 

조금은 땅에 묻기도 하고, 

내 손에도 조금 묻혀서, 

골목을 돌아 처음 만난 개를 쓰다듬고, 

울타리 위 고양이의 턱밑을 간질이고, 

다시 돌아 벽 너머 원수와 악수하고 나면, 

나 아무도 미워하지 않아도 될까? 

심장을 잘게 으깨어서, 

신변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딱 그만큼 잘게 으깨어서, 

그래도 나 원토록 이끌지 않는 건 

내게 심장은 하나이기 때문일까 

그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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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로 태어나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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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맹수로 태어남에, 

물면 놓지 않고, 

놓을 것은 물지 않으니, 

사슴에겐 고약한 놈이라, 

토끼에겐 끔찍한 놈이라, 

네 여긴 오지 몰라, 

네 발톱 세우지 말라, 

발톱을 뼈까지 구겨 넣고, 

줄무늬를 지워낼 듯 살았소. 

사람이 나무라면 믿음이 흙이라, 

드러난 뿌리에 흙 뿌린 이 내 스승이요. 

침 뱉은 이 내 적이라 

그래도 범과 맞서고 싶소, 

그래도 산에 오르고 싶소, 

만인이 사색해도 

그래도 외치고 할퀴며 

맹수임을 잊지 않고 살아왔소. 

명암을 등으로 부숴내고, 

시간을 몰아내며 살았소, 

먹이를 구걸하느니 먹이가 되겠소, 

재롱을 부리느니 사냥감이 되겠소, 

나 곰에게 맞아 죽을 순 있어도, 

토끼에게 물려 죽을 순 없소, 

정 시대가 나의 죽음을 바란다면, 

내 힘찬 울음으로 공기를 몰아내고, 

나 그곳에서 숨 막혀 죽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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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를 그리면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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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면, 

잠시 시간이 멈춰 

듣고 있니? 

시간이 멈춰도 내 목소리는 닿을까 

왠지 손을 쫙 펴면 

막 따스함이 손바닥에 느껴져 

네 손과 마주함을 상상해도, 

이내 바람은 그 온기를 흩어가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 

난 조금 쓸쓸해서 

듣고 있니? 

있지, 하고 싶은 말 많지만 

다 전하지 못할 거 같아 두려워 

말이 끊긴 그 부분에서 오해가 만들어지면 

나 어떻게 그걸 알지? 

나 어떻게 오핼 풀지? 

라라라 

난 오늘도 나를 멈춰 

네가 나를 안아 주기를... 

세상에서 날 뺏어가기를 

내가 시간을 멈추면, 

너 내게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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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못한다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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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날 그렸더니 참 못한다. 

웃고 누워 

의자의 끼익 거 림이 낯익다. 

천장의 무늬를 따라가면, 

결국 형광등과 만나 눈 감아도 

빛으로 빛으로 

그래도, 참 못한다 

떠나간 미덕이라도 

용케 지지고 앉아 

오늘도 한 획 또 한 획 

책에 베이고 

사람에 베여도 

나 읽고 그려 

종이의 팔랑거림이 

사람보다 듣기 좋다. 

그래도 나는 참 못한다. 

너는 달리지만 

나는 걷는다. 

너는 버리지만 

나는 보듬는다. 

여행 끝에서 

혹시 만난다면 

누가 멋쩍어 웃을까 

그래도 참 나는 못한다. 

하나, 둘 세다 보면 

혀끝이 아려와서 

노을 지는 부서진 담벼락을 

혀로 걷는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어 일어서 

금세 종이를 맞이하면, 

나 참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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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꽃이 피다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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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부르지 않아도 불리운다. 

바닥에 누워 귀를 기울이면 

창문 너머 바닥에 비가 부닥치고, 

그 흔들림이 내 몸까지 전해져 

이젠 내 피가 비다. 

그리고 꽤 구릿한 흙탕물 사이 

잠시 비가 맑게 피다. 

핀 비인지, 

비 피인지 

그 맑은 황홀함으로 

이젠 내가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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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밤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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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루 두 번 돈다. 

같은 곳을 지나며 묻는다. 

몇 번이나 너를 스쳐 가는, 

그래서 너는 묻는다. 

스쳐 가고, 또 스쳐 가고, 

멀어지는 말은 또 들리지 않는다. 

데자뷰는 그 색만큼 불안함을 심어주고 

의문은 커져 발걸음은 더디다. 

그래도 너는 두 번 돈다. 

언젠가는 널 볼 수 있겠지 

나를 이해해줘 

나를 이해해줘 

나를 이해해줘 

두 번 돌고, 세 번 말한다. 

시작이자 끝에서 듣는다. 

하나, 둘 

넌 오늘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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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와 수염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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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는 길을 떠난다. 

신선처럼 보이지도 못하고 

도인처럼 보이지도 않아서 

철학을 요구하는 사람도,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사람도 없지만 

평상에 앉아 막걸리를 그 긴 수염으로 

적셔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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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묻는다면, 

그저 막걸리에 붙은 수염이라 말하려오 

어딜 보느냐 묻는다면, 

내 삿갓의 끝이라 말하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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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진 손으로 수염을 닦아내곤 

껄껄 웃으며 나그네는 다시 나선다. 

그 나그네 참, 

수염에 잘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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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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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망울에 너를 본다. 

강의 표면을 눌러 담듯, 

바람에 꽃내음이 층져있다. 

발가락을 살짝 두들기는 것만으로 

너무 많은 것이 변할 것 같아, 

눈을 감고 잠시 쉰다. 

선물상자의 끈을 잡은 마음으로, 

잠시 설레 임에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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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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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앉아도, 꽃내음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맡는다. 

네 눈에 별은 없어도, 

내 눈에 별은 네 눈에서 옮겨왔다. 

나뭇잎이 중력 위에서 전자의 운동을 한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구름이 비치고, 

맺힌 이슬 너의 입술로 옮겨 놓았다. 

의자의 받침대로 살짝 당겨놓은 너의 발목이 곱고, 

따스해 보이는 가슴에 어설픈 시 하나 얹어 놓으면, 

네 미소에 되려 받는다. 

네 입술에 올려놓았던 이슬, 

내 눈으로 되려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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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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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두고 떠났소 

벗어놓은 봇짐도 동행했나 보오 

소나무 남은 밑동의 나이테처럼, 

그 자리를 망아지처럼 돌다, 

그냥 앉아 웃어버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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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엔 닭이었다가, 

원숭이가 되어 성내었다가, 

결국은 소가 되어 눈물 흘리오. 

소나무 남은 밑동의 나이테가 둘이라, 

나를 떠난 것이 저기 붙었소. 

​

이제 생각나오. 

봇짐에 고이 모셨던 애첩이 생각나오. 

한 글자가 떠올라 미소 짓다가, 

두 글자가 떠올라 웃었소. 

하지만 떠난 생각에 다시 울었소. 

​

봇짐 없는 선비는 다시 길을 가오. 

벗도 잃고, 봇짐도 잃었소. 

청빈이 선비의 덕이라면, 

세상 그 덕 나에게 다 온 듯하오. 

이젠 발자국이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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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실2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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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생각했다. 

내 마음이 가진 공간보다 더 큰 감동을 느꼈을 때, 

내 육신이 주저앉을 것 같은 그리움을 느꼈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어떻게든 남기고 싶은 이 기분을 붙들고 생각했다. 

남기고 싶다. 

이대로 사라지게 두기엔 너무 슬퍼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시인이 아닌 나를 원망해 봐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서 

그저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만 있다. 

잡고 싶지만, 남기고 싶지만, 

도저히 남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 

이대로 흘러가버리는 것도 너의 고약함이겠지 

그저 바라본다. 

노을이 지는 것을 막지 못한 어릴 때의 나처럼, 

그때의 분한 마음 그대로 바라본다. 

하지만 무척 기쁜 얼굴, 

너, 돌아와야 해 

꼭, 돌아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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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의 아침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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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린 작은 빛 하나에, 

너무 많은 굴곡을 세상은 지녔다. 

내 작은 정원에 드린 수백억 개의 빛의 굴곡들. 

나뭇결을 따라 수놓아진 저 굴곡과 내 삶은 닮았다. 

흙의 표면에 따라 파도치는 저 굴곡은 내 고민과 닮았다. 

잠시 눈을 감으면, 

내 지난 인생이 심하게 압축되어온다. 

지나온 한 줌, 

다가올 한숨, 

입안에 담고 지그시 입술을 내리누른다. 

침묵으로 과장된 시간, 

수많은 명암이, 

화가의 마음을 설레 이게 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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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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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과 친한 하루, 또 이틀 사흘 

나 살아온 시간만큼 맞추어 쉬려는 듯, 

몸을 뒤척이며 잡념을 애써 밀어낸다. 

마음 가득한 것이, 세상엔 아직 이라 

내 욕심에 맞춰지지 못한 나의 흔적이 

또 미래의 나를 한숨짓게 할 게 뻔하다. 

무력함. 

그 이름으로 오늘도 난 상처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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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넘어갈 때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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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간은 뒤를 향해가고, 

수 없이 빛나는 별들이 초를 센다. 

달이 나를 닮았다고 말해버리면 울 것 같아 

두 손으로 두 눈을 덮는다. 

저 많은 별, 

수없이 쓰이어진 시들, 

그럼에도 시인에게 발견되지 않은 별 하나 있다면, 

그 별에 꼭 시 한 편 지어주고 싶다. 

달의 인력에 호응하며, 

꼭 하나 읊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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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를 머금은 산책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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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가면 너를 만나겠지 

그 숲 속 작은 길에서, 

바닥에 흐드러진 빛과 그림자를 골라 밟으며 

세상 밖 명랑함으로 

나 힘껏 미소 지으면 너를 보겠지 

산소를 입안에 머금고 

맴도는 음악도 머금은 채 잠시 두면, 

결국 나지막이 내뱉기 전에 너를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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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지나고 나면, 

저 모퉁이를 돌고 나면, 

어떻게든, 어떻게든 

나 너를 향해 걷다 보면 

결국 산소를 머금은, 

그래 딱 나처럼 

노랠 흥얼거리기 직전에 너를 보겠지 

잠시 놀란 표정으로 시간 속에 멈춘, 

그런 너를 만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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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대비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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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빨라서, 걸음은 느려서. 

나만 남겨둔 채 세상은 돌아간다. 

거미줄에 걸린 저 빈 껍질이, 

마치 세상과 같이 느껴진다. 

빛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다시 한 번 내 방에 시간을 채우고 나면, 

미처 채우지 못한 한 곳에 내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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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어색한 공기의 흔들림이 

마치 내 몸을 훑어내듯 나를 긁어댄다. 

벽지에 스며있던 그리운 공기가 찾아들어 

잠시 시간이 없는 공간에 드리운다. 

빛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다시 한 번 내 방에 명암을 만들고 나면, 

유독 대비가 다른 한 곳에 내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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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으로 시작한 모험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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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으로 시작한 모험은, 

전등의 스위치로 끝맺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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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살아 감사하며 

또, 배우는 것과 모르는 것에 감사하며 

가끔은 몸 안에 공기를 다 들어낼 듯 

무언가에 열중한다. 

낮에서 노을로 넘어가는 그 시간대처럼, 

내가 바라보는 곳은 애매하기 짝이 없어서 

그래도 용케 눈동자만큼은 나른함에서 벗어나 있다. 

​

그리고 

​

하품으로 시작한 모험은, 

전등의 스위치로 끝맺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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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명암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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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빛이요, 또한 어둠이라 

시간이란 긴 줄 위에 

때로는 빛으로, 

때로는 어둠으로, 

내 하루의 기승전결이 

또한 웃음으로, 

더욱이 눈물로 진행되지만 

결국 예술적 척도를 두고 

아름다움은 그 자태가 빛과 같기에 

어둠도 빛이요, 빛도 어둠이라 

아서라, 

내 존재에 설켜있는 명암이 

결국 내 삶이고, 나의 아름다움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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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 살아있다_2008

 

나지막이 음악을 흘려내고, 

내 삶의 이유를 가슴 깊이 느껴낸다. 

항상 영원함을 추구하며 시선을 드리우지만, 

그것이 존재할 수 없음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새벽의 저 푸르스름한 빛처럼, 

곧 사라져 자태를 잃어갈 것이라도, 

아침을 거쳐 저녁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면, 

그러한 여행을 영원이라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새벽 속에 살아 있고, 

또 꿈속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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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새의 신화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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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거친 숨을 내몰아 쉬고, 

하늘은 아침 새의 잔상을 숨겨준다. 

태양의 오랜 신화에 몸이 공명하듯, 

체열은 조심스레 그 자존심을 내세운다. 

아아 아침 새여, 

내 자라다 만 꼬리에 의해 균형감을 잃더라도 

내 나아감은 람세스의 눈과 같이 당당하기를, 

비록 그것이 선물 속에서 무기를 집은 아킬레우스와 같이, 

피할 수 있었던 고통과 시련을 겪게 할지라도, 

나 차라리 영웅으로 피 뿜어 죽기를. 

소인배가 되어 누군가를 질투하며 시기하지 않기를, 

검이 아닌 손가락으로 적을 가리키지 않기를, 

땀 흘리는 것보다 침 튀기는 것을 즐기지 않기를, 

그리하여, 

나 스스로 부끄러운 사람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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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뜬 새벽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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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의 불빛과 저 방의 불빛이 이어진다. 

사이 공간엔 그림자가 흐른다. 

밤이 빛을 지워내는 사이에서도, 

유독 형광등은 나를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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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 

빛을 눌러 담듯 닫아낸 방문 틈새로, 

그래도 이 방의 불빛과 저 방의 불빛이 이어진다. 

내 사지까지 투영되는 창문, 

그곳까지 잘도 갔구나. 

 

나를 안기를, 나를 보듬기를, 

내 땀샘으로 스며들어와 내 붉은 혈관을 타서, 

내 피를 심장까지 분홍빛으로 밝혀내며, 

그 부근에 자리 잡은 어둠을 몰아내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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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했으니깐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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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눈을 피해 기다릴게, 

똑같은 들과 똑같은 나무와 똑같은 하늘이지만, 

그 속에서 늘 다른 하루를 발견하고 

누구도 찾지 않아 변치 않는 그곳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기다릴게. 

시선은 순수함을 상하게 한다고 네가 말했으니깐 

​

네가 오는 방향을 보며 기다릴게, 

오늘은 조금 꾸민 모습으로, 조금은 달라진 모습으로, 

들판의 먼 곳까지 보이는 맑은 하늘에 감사하며 

햇빛을 가려주는 푸른 나무에 감사하며, 

네가 오는 방향을 보며 기다릴게. 

하얀 고양이를 머리에 얹고 올 거라 네가 말했으니깐 

​

조금 늦은 시간이라도 웃으며 기다릴게, 

조금은 초조하고, 더 많이 설레 이는 표정으로, 

노을을 업고 노는 구름을 감상하며 

분홍색 단화로 풀잎의 끝도 훑어보며, 

조금 늦은 시간이라도 웃으며 기다릴게. 

나에게 올 거라고 네가 말했으니깐 

어설픈 표정으로 미안하다 말하는 너였으니깐, 

오늘 나에게 올 거라고 네가 말했으니깐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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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 안녕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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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안녕 

그리고 또 안녕... 

 

무엇이 만남이고 

무엇이 헤어짐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안녕을 말한 후에도, 

나는 네 곁에 있거나, 

네 곁으로 가는 중이었으면 한다. 

 

오직, 

그 두 개의 시간 중의 하나에, 

내 몸과 마음을 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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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는 길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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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이면 밤은 마치 친구처럼 내 곁에 드리운다. 

아틀라스의 팔뚝처럼 어둠을 들어낸 가로등이 저 너머 보이고, 

그 빛은 강에도 남아 결국 넌 두 개가 되었다. 

하나는 완고하지만, 하나는 위태롭다. 

바람이 강의 표면을 심하게도 두드린다. 

저 너머에 있는 가로등은 나의 이상이요. 

바람에도 흔들리는 강 위의 가로등은 나의 모습이다. 

구겨진 비닐봉지의 표면처럼, 

강은 셀 수 없이 구겨져 간다. 

물결의 도끼에 난도질당한 그 위태로운 형상은, 

밤의 마지막까지 그곳을 떠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슬프지만 아름답다 네가. 

​

오늘따라 강물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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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함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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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흘러 가슴 쓰려 온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듣고, 

많은 것을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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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제 내가 

어디를 다시 걷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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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 가슴 쓰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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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면 된다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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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흘렀다. 

변하지 않는 맘으로 

늘 같은 모습으로 

그런 바보 같은 모습으로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

모두가 변해가는 그 속에 도태되어, 

가끔 슬퍼하고, 가끔 추억하며 

그래도 나 변함없이 

그저 종이 하나에, 흑연을 묻히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

나는 이러하면 된다. 

그저 그러하면 된다. 

나 다시 여행을 떠날 때에, 

영혼에조차 흑연이 묻어 있도록 

나는 그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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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함께 했다는 것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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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아름다운 곳은 항상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유산이라든지, 세계적인 관광명소같이.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내가 걸었던 그곳이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내가 만나고, 내가 말하고, 내가 걸었던 그곳이 

결국 나를 울릴 만큼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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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뛰다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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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도 안고 간다. 

하나만 바라보고 세상은 버린다. 

거품같이 곧 터질듯한 내 생명이라도, 

그 표면에서까지 비친 넌 나의 한 장 그림. 

무리 짓지 않는다. 

욕심내지 않는다. 

눈 감아도 모습은 절대 변하지 않아서, 

강물에 뿌린 나뭇잎을 밟고 뛴다. 

풍덩 빠져 물결이나 일으키는 난 바위일지라도, 

강물이 잠시 비킨 그곳에 네 자리는 비워둔다. 

성난 다슬기 그 솟은 머리로 내 발을 찔러도, 

난 웃으며 네 자리는 비워둔다. 

바위같이 네 자리는 비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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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를 위한 동화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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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맨홀구멍에 내 시간을 끼워 놓았다. 

널 위해 편지를 붙이러 가며, 

창틈에 먼지를 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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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리는 먼지 속에 니가 있다. 

날리는 먼지 속에 내가 있다. 

저것이 어떤 벌레의 잔여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낭만은 크게 동화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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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본 신호등에 하품을 뿌린다. 

파란불의 횡단보도를 넓게 건너며, 

정지선의 차들을 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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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대에 사람이 있다. 

차 한 대에 세상이 있다. 

저것이 단지 아스팔트를 검게 괴롭힐 뿐이라도 

그래도 마음은 순수하게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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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앞에 서서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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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가루 묻은 하얀 남방을 입고 난 비 앞에 선다. 

비는 쏟아진다. 

언제나 그랬듯, 

소박한 음악과 함께 그저 쏟아진다. 

이 짧은 시간에, 

이 세상에 모두 쏟아지는 빗방울은 몇 개나 될까 

만약 내 시간의 1초가 빗방울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여기엔 내 모든 삶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이런 짧은 시간에서 사람은 무엇을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단 한 번에 비가 쏟아버릴 내 작은 시간 속에서, 

난 그저 너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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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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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말하고, 

공기를 세었다. 

입술도 당겨보고, 눈썹도 당겨보고 

계속 계속 안녕이라 말하고는 

공기를 세었다. 

강아지풀을 힘껏 두드리고, 

의미 없이 제자리에서 동동 구르다 

또다시 안녕이라 말하고 

공기를 세었다. 

하나, 둘 

공기를 세었다. 

니가 안녕하고 말해주길 기대하면서 

하나, 둘 

공기를 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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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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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늘은 마치 손으로 헤집은 냇가의 바닥과 같다. 

지금 창문에 부닥친 건 나의 하루인가 너의 하품인가 

이정표의 녹슨 부분은 자유가 침범된 내 하루라 

내 발걸음의 둔탁한 음만 성내며 두들겨 본다. 

노을은 저기 오는 버스 지붕으로부터 부서져 있어서 

버스의 번호판과는 상관없이 그저 반가움으로 굴러온다. 

이전이었나 다음이었나 조금의 추리도 여흥으로는 마땅치 않아서 

그래도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아침과는 다른 여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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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름 없이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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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름 없이, 작품만 남아주면 된다. 

어떠한 찬사 없이, 작품만 남아주면 된다. 

요란하게 기억되는 건 싫어한다. 

사람의 감정을 정신없이 흔드는 것도 싫어한다. 

푸른 하늘도 사람은 쉽게 지나치듯, 

그래도 하늘처럼 작품만 남아주면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그렇게 풍경처럼 작품만 남아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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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녕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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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무겁게 짓눌려 온다. 

어제와 다를 바 없던 오늘의 한구석에서부터 갑자기 불어닥친다. 

자아존재의 이유를 추궁하며 나의 모습을 억눌러 놓는 문장들, 

나의 게으름을 눈앞에 내세운 채 그 언어는 무섭게도 나를 갉아 놓는다. 

안녕, 그리고 안녕 많은 번뇌와 갈등들이여 

얼어붙은 손가락을 품에서 녹이듯 안녕, 그리고 안녕 

 

가끔은 무섭게 짓눌려 온다. 

주기적으로 나를 공격하는 안일함의 칼날이 내 목을 그어 놓는다. 

뒤늦은 확인과 함께 괴롭게 젖어드는 후회의 시간들, 

어떠한 말로도 돌릴 수 없는 사실에 나는 그저 괴로워한다. 

안녕, 그리고 안녕 많은 후회의 시간들이여 

무뎌진 연필을 다시 날카롭게 깎아내듯 안녕, 그리고 안녕 

 

가끔은 무겁게 짓눌려 온다. 

작은 망설임에서부터 파생된 무의미한 시간들이 머리에 각인된다. 

내 꺾여버린 다짐과 함께 뱉어지는 한숨들, 

깨어진 약속과 함께 내 존재는 보잘것없는 어둠에 잠겨간다. 

안녕, 그리고 안녕 검은 정적이여 

잠기 어린 눈에 다시 힘을 실 듯 안녕, 그리고 안녕 

다시 시도되는 파도의 연주처럼 안녕, 그리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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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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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으킴은 고독의 파도와 함께 젖어온다 

공간은 머금어야 할 것을 버린 채 검은 허공으로 날 노려보고 

전등의 불빛이 시간과 함께 내 등을 문밖으로 떠밀면, 

미처 다 열리지 못한 창문 사이로 사념의 조각들이 흐트러진다. 

시간은 고독, 그리움, 변하지 못한 가로수와 같이, 

바람이라 불리는 무언가가 방안을 갉아가고 

정적의 눈에서 슬픔으로 자리 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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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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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의 푸른 자태가 내 외로움을 짓이긴다 

떠밀려온 잎사귀 하나의 섬광이 내 좁은 슬픔을 찢어간다 

이제 막 빛의 어귀에서부터 하늘이 피어나고 

오늘도 내 작은 고독은 작은 감동에도 깨어지고 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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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추억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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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뒤 작은 틈, 낡은 지렁이 하나 꿰어지지 않은 빈 바늘을 물 위로 굴려 

물이끼 옷 얇게 걸쳐 입은 바위 사이로 잠겨 빈 바늘의 모습이 사라지면 

난 다시 환상의 물고기를 꿈꾸지... 

맑은 웃음을 던져주는 넌 내 옆에 있으나 없는 사람이지 

나의 대나무 낚싯대가 조잡하고 초래해도...나의 빈 바늘이 우습고 유치해도... 

너는 그렇게 내 곁을 지켜주겠지, 당겨질 리 없는 낚싯대 끝을 같이 보아주겠지. 

바람처럼 엷은 설렘으로 작은 돌을 두드리면, 

기대하지 않았던 모래 알갱이 하나 초록 품으로 뛰어 파란 말을 달리지 

물 위에 안겨 쉬던 하늘이 뛰어든 파란 말에 놀라 쫓겨나고 나면 

그 공백에 너와 나를 새겨 서로 웃으며 

조잡한 낚싯대도, 우스운 빈 바늘도 모두 물속에 잠겨 빈손으로 돌아오지. 

오늘은 추억이란 하얀 물고기를 내 가슴에 담고, 

내일은 그물 없는 잠자리채로 가슴 가득 하늘을 모아야지... 

그렇게 나는 너와 함께 환상을 쫓아야지...